고흐가 주고받은 900여 통 편지 중 그의 예술과 인간적 면모를 중심으로 골라 시대순으로 엮었다. 두 권은 크게 그를 지원한 동생 테오와 친구 라파르트와의 편지로 나뉜다. 출간 25주년을 맞아 고해상도의 그림으로 변경됐고 잘 알려지지 않은 후반기 명작이 추가됐으며, 화가가 되기 전 1878년의 스케치도 볼 수 있다.
책소개
'당신의 빛이 세상을 비추게 하라.
이것이야말로 모든 화가들의 의무다.'
물질적 · 정신적 곤란과 이겨내야만 했던 투쟁 속에서
꿈의 방향을 잃지 않은 고독한 예술가의 빛
'빈센트 반 고흐' 하면 우리는 보통 가장 먼저 '천재 화가'라는 말을 떠올린다. 천부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화가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고흐는 미술품 매매점 직원, 견습교사, 서점 점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나중에는 신학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 관심이 생겼고, 20대 중반이 지나 전업 화가가 된다. 혼자 해부학을 공부하며 데생 작업을 하고, 어느 가난한 화가에게서 원근법을 배우면서 그림 그리는 법을 조금씩 익혔다.
고흐는 화가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해 얼마 안 된 시기에 만난 화가 라파르트와 5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반 고흐, 영원한 예술의 시작》은 그가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책이다. 고흐는 받은 편지를 잘 보관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 날짜도 제대로 표기하지 않곤 했다. 불화로 인해 갑작스럽게 편지 교류가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라파르트가 1881년 9월부터 고흐에게 받은 모든 편지를 잘 보관한 덕에 우리는 젊은 예술가로서 고군분투하던 고흐의 또 다른 일면과 강인한 성품, 천재성의 진행 과정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어려움에도 예술적인 힘과 열정을 꿋꿋이 간직해야 하네.'
새로운 것을 그리고 싶었던 젊은 화가의 의지
고흐는 가난한 광부의 일상, 평범한 농부의 하루, 여름 저녁의 밀밭, 동네의 우체부 얼굴 등 민중의 삶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비록 상류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길게 봤을 때 분명 높은 평가를 받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반 고흐, 영원한 예술의 시작》에는 고흐가 이렇듯 새로운 미술에 대한 확신을 갖기까지의 시간이 담겨 있다.
고흐는 라파라트에게 보낸 편지에 잉크, 분필, 크레용 등 새로 미술 도구를 접한 후의 기쁨과 사용 후 감상, 새로 시도하고 있는 그림 기법에 대한 생각, 많은 정보가 담긴 삽화 잡지 정보 등 화가끼리만 통하는 것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한다. 그의 후기 대표작 중 하나인 〈슬픔에 잠긴 노인(영원의 문에서)〉이 거의 10년 전에 시작된 〈피로에 지쳐〉 데생 시리즈에서 발전된 것임을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고흐가 화가로서 얼마나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을 기울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 안에는 쓰레기 더미 안에서 그릴 것을 찾고, 무료 급식소 사람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씨 뿌리는 사람'을 멈추지 않고 그리는 고흐가 있다. 그는 자신을 이해해줄 친구와 대화를 이어가면서 조금씩 평생의 취향, 영원히 그리고 싶은 것을 알아간다.
고흐는 라파르트에게 직접적으로 '고독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작업을 위해 농부들을 만나는 것 외에는 누구도 보지 않고 지냈다. 그렇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훗날 어떤 이들은 말과 반감과 무관심으로 나를 괴롭힌 걸 충분히 후회하게 될 걸세'라고 쓴다. 아직 인정받지 못한 젊은 예술가의 호기로운 외침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 결말을 알고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항상 내가 할 줄 모르는 것을 시도하네.'
고흐의 숨어 있는 명작을 전면 재배치한 개정판
고흐는 전업 화가로서 약 10년의 시간을 보내고 생을 마감했는데, 그가 남긴 그림은 800점이 넘는다. 산술적으로 1년에 80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는 건데, 1880년대 초반이 그림 기법을 배우고 자신에게 맞는 도구를 찾는 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1880년대 후반부터 사망한 1890년까지 그의 창작열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반 고흐, 영원한 예술의 시작》은 기존 책을 개정하면서 대대적으로 고흐의 작품을 재배치했다. 책에 수록된 고흐의 편지는 1881년부터 1885년까지다. 그래서 편지를 쓸 당시 고흐의 작품들과 함께, 그의 예술혼이 불탔던 시기에 그린 많은 그림 중 국내 독자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후반기 명작을 함께 실었다.
고흐가 죽기 몇 달 전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라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한, 분홍색 하늘을 배경으로 올리브 나무들이 가득한 〈올리브 따는 여인들〉, 고흐와 친하게 지냈던 우체부 룰랭과 그의 아기를 담은 초상화, 프로방스의 농가와 밀밭을 정겹게 담은 화사한 색채의 풍경화들, 그리고 화가가 되기 전인 1878년 스케치 〈라켄의 오샤르보나주 카페〉까지, 다른 책에서 보기 힘든 작품들까지 만날 수 있다.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잃지 않은 젊은 고흐의 글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10여 년의 작품들을 보며, 우리는 고흐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천재성이 눈에 보인다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지은이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네덜란드 남부 작은 마을에서 개신교 목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고흐는 1869년부터 큰아버지 ‘센트 삼촌’의 헤이그 구필 화랑에서 일했다. 그런데 1873년 구필 화랑의 런던 지점에서 고흐는 당시 산업화의 그늘 아래서 비참한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충격과 실연당한 아픔으로 정신적 불안을 겪게 된다. 1875년 파리 본점에서는 예술 작품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한 환멸과 거부감을 견디지 못하다가 결국 해고를 당한다. 이후 전도사가 되어 벨기에 탄광 지대에 파견되지만 거기서도 선교단체와 마찰을 빚고 해고되는데, 이때 고흐는 광부들의 비참한 현실을 그림에 담으면서 화가가 되겠다는 열망을 확인한다. 1881년에 헤이그에 정착하여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을 그렸다. 1886년 테오가 있는 프랑스에 정착하고 툴루즈 로트레크, 에밀 베르나르, 존 러셀 등의 화가들과 친구가 되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1888년에 따듯한 프로방스 지방 아를로 내려가 「별이 빛나는 밤」(1889년) 등을 그렸고, 이때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파리 앵데팡당전에 참가했다. 고흐는 고갱을 자신의 ‘노란 집’으로 불러 함께 살았으나 심한 불화를 겪다가 자신의 귓불을 칼로 잘라내고 만다. 이후 생레미의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1890년 파리 근교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불꽃 같은 열정으로 걸작들을 그려냈다. 하지만 석 달 뒤에 여관 다락방에서 권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누워 있는 상태로 발견되고, 7월 29일 새벽에 동생 테오의 품에 안긴 채 삶을 마감했다. 고흐는 2000여 점에 달하는 유화와 데생을 남겼고, 테오도 형이 죽은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고흐 형제 사후에 테오의 아내 요안나가 고흐의 작품 전시회를 열고 편지를 출간하는 등 고흐를 알리려 애썼다. 이후 테오와 요안나의 아들로 큰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빈센트 반 고흐 주니어는 상속받은 고흐의 그림들을 네덜란드 정부에 기증하여 1973년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이 세워지는 데 기여했다.
옮긴이 | 박은영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5대학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옮긴 책으로는 《미셸 푸코 진실의 용기》 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라파르트와의 우정 | 내 색조는 더 어두워질 것이다 | 그리는 일이 불편하다
1장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라
인물화 그리는 묘미 | 씨 뿌리는 사람 | 충고 | 삶의 미천함에서 오는 고통 | 자연 또는 현실의 여신들 |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라 | 나는 광신자라네 | 낯선 곳에서의 시작
2장 예술가적 양심
나의 보물 | 그림의 가치 | 입원 | 약해지면 안 되는 이유 | 보리나주 여행 계획 | 그림 제작자보다는 호텔 심부름꾼이 낫다 | 어른 고아 | 미술품 수집 | 인간들 속에 있을 때 나는 늘 덜 인간적이다 | 유행과 상관없는 나의 길 | 석판화 작업 | 예술가적 양심
3장 사랑, 연민 그리고 평온한 광기
불우한 여인, 불우한 시대 | 사랑, 연민, 그리고 평온한 광기 | 뜻하지 않은 행운 | 집주인과의 투쟁 | 쓰레기 더미에서 피는 꿈 | 일과 돈 | 가장 아름다운 유화 | 모델 작업 | 블랙 앤드 화이트 기법 | 예술가로 산다는 것 | 사랑하면 할수록 | 라파르트와의 만남 | 화가와 문학 | 네 개의 데생 작업 | 졸라와 미술
4장 즐거운 작업
슬픈 사고 | 서운한 마음 | 그림을 파는 일 | 채색 작업 | 내 그림 애호가를 만나리라는 희망 | 끊임없이 작품을 선보일 필요 | 계약 | 즐거운 작업 | 뜻밖의 여행 계획 | 수상 소식
5장 시들한 우정보다는 결별을
어떤 조짐 | 돌려보낸 편지 | 받아들일 수 없는 조언 | 화가로서의 열망 | 시들한 우정보다는 결별을 | 마지막 통고 | 화해 | 아카데미에서는 배울 수 없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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