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현대구상화가협회 공동기획
2025 양평군립미술관 봄 기획전시
한국 현대 구상미술의 단면: 사실과 재구성
전 시 명 <한국 현대 구상미술의 단면: 사실과 재구성>
전시기간 2025.03.07.(금)~ 05.06.(화)
전시장소 양평군립미술관 전관
전시부문 회화, 부조 등 70여 점
참여작가 강위덕, 권혁, 김성호, 김와곤, 김용중, 김종원, 류성하,
문인환, 민정기, 박능생, 박일용, 박정렬, 서용, 석철주,
설경철, 오광섭, 이강화, 이구일, 이길우, 이석주,
이영희, 임철순, 정해광, 황재형, 황제성 (총 25명)
관람시간 오전10시~오후6시 (입장 마감 오후 5시) / 월요일, 1월 1일, 명절 당일 휴관
경기 양평군 양평읍 문화복지길 2 / 031.775.8515
19C 중반 사진이 발명되면서 회화는 죽었다고 천명한 지 150년이 지나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회화는 건재하다. 앞으로 AI가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역시 인간의 그림은 여전히 그려질 것이다. 현대의 기술을 활용하고 당대의 담론을 녹여낸 그림을 그릴 뿐, 예나 지금이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들은 존재하고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감각과 기술을 총동원해서 표현 욕구를 분출하기 때문이다. 단지, 중세를 지나 근대 이후 현재까지의 회화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래의 회화 또한 기술의 변화에 발맞춰 형태와 형식은 꾸준히 변화해갈 것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지극히 사실주의(寫實主義)적이고 구상적(具象的)인 작품들이다. 구상 회화의 형태는 겉으로 보면 모방과 재현(미메시스, mimesis)을 기조로 표현되는 형식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재구성된 허구와 작가가 창조해낸 낯선 형태들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이것을 사실적 재구성이라 명명하겠다. 기존의 일반적인 형태와 작가의 계획적이거나 또는 무의식이 만들어낸 형태가 만났을 때, 제3의 생경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작가는 낯선 풍경 속에 작가의 사고와 철학을 녹여 넣는 것이고 관람자가 그 의도를 알아차리면서 비로소 작가와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구상회화 중에서도 크게 정통 사실주의적 형태의 작품, 극사실주의적 작품, 그리고 구상적 초현실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사실주의(Realism) 형식의 작품은 수 세기 동안 여러 예술 흐름과 사회적 변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재구성되고 발전해왔다. 사실주의는 이전 회화의 기념비적이거나 이상적 아름다움보다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했고 현대에 들어서면서 시대가 주목하는 주제들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 즉, 환경과 기후, 자본과 산업화에 따른 인간 존중 문제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작품의 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사실주의는 다양한 매체를 수용하고, 전통적인 미술의 영역을 넘어서 사진이나 미디어 등 현대 미술 매체를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타 장르에서의 사실주의 표현에서도 각자의 영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도 했다.
사실주의는 초현실주의(Surrealism)나 극사실주의(Hyperrealism)와 같은 예술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극사실주의는 사실주의의 세밀한 묘사 방식을 극대화하여 사진 기술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극한의 표현에 도전하는 회화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이는 사실성에 그치지 않고 사물 자체가 갖는 의미와 상징성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 것이었고, 과학과 기술의 한계를 넘어선 예술의 위상을 회복하고자 한 이유도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사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현대 회화 정신의 일로를 제시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그와 대비하여 현대의 사실주의 회화는 과학적 이론에 의한 시각적 감각과 표현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경험과 감성, 사회와 역사적 이슈를 서사라는 방법을 통해 표현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내러티브 효과를 통해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는 공감과 소통을 이뤄가고 있다. 이러한 재구성은 사실주의 회화의 본질을 명료하게 하면서 영역의 확장을 이뤄가고 있다.
이상화된 감정과 상상력에 기댄 낭만주의 화풍에 반발하여 등장한 사실주의는 현실 세계와 일상적인 삶을 중시한 데 비해서 극사실주의(Hyperrealism) 작품은 현실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하지만, 때로는 비현실적인 상황이나 설정을 포함하기도 한다. 이는 강한 시각적 충격을 주거나,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런 면은 현실과 실제를 있는 그대로 화면에 담으려는 사실주의 회화와 대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인물의 표정과 자세를 통해 감정이나 심리를 깊이 있게 탐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현대의 다양한 과학과 기술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사진과 디지털 편집, 스캔 등을 통해 더 정교한 작품을 제작하면서 현대 미술의 한 장르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 출품한 작품 중에서 사실주의와 극사실주의 작품을 구분해 보는 일은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한편, 구상주의적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구체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적 표현보다는 의미 전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작가의 역사관이나 경험, 작가의 사고를 회화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특정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보여줄 수도 있고, 구체적 형상을 통한 회상이나 기억의 편집, 조합될 수도 있다. 또한, 표현 방법에 있어서 이성적 계획보다는 무의식적이고 잠재적 형상들을 사실적 형상과 결합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는 이성적이라기보다 반이성적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경향은 사실주의나 극사실주의에 반하는 형태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주의적 표현기법 위에 초이성적 작가 감성을 더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사고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한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구상미술(具象美術)은 현실과 일상의 모든 형태를 직접 묘사하는 미술 장르를 의미한다. 즉, 상징화되고 기호화된 점, 선, 면이나 색을 구성적으로 표현한 구성미술(構成美術)과는 달리,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그림이나 조각을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한국 구상미술의 단면을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25명의 작가를 통해서 보여주는 특별한 전시다. 현재 국내·외 화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작가와 50년 이상 한국 현대 구상미술을 견인해 온 한국 원로 대표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 현대구상화가협회와 공동 기획한 전시이니만큼 그 의미는 더욱 크다 할 수 있다. 구상미술이라는 광범위한 회화 분야를 대표하는 원로, 중견작가들의 특별한 화풍을 통해 수준 높은 한국 구상화의 일면을 차분히 확인할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카데미즘을 넘어 당대의 새로운 구상 회화의 세계를 열어가는 참여 작가들과 대한민국 현대구상화가협회에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글. 양평군립미술관 학예실장 이홍원
주요 작품 소개
1. 시각의 깊이: 전통적 감각의 현대적 해석
구상회화는 눈에 보이는 것을 어떻게 감각하는가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감각은 회화의 전통을 바탕으로 시대의 흐름에 맞게 해석되어왔으며, 눈 앞에 펼쳐진 일상의 풍경은 예술가의 시선을 통해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예술가들은 황금비율이나 원근법과 같은 전통적인 회화의 기법을 계승하면서, 그 위로 드러나는 섬세한 빛의 표현과 깊이 있는 공간감을 통해 평범한 순간 속에 깃든 깊은 사색의 순간을 환기시킨다. 화면 속에 담긴 풍경과 소재는 동시대의 순간을 나타내는 기호가 되어,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순간들을 영원으로 승화시킨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들은 구상회화가 지닌 시각적 깊이와 현대적 의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강화 LEE, KANG-HWA
비상
2024
캔버스에 혼합재료
220×250cm

류성하 RYU, SUNG-HA
환한 날
2015
캔버스에 유채
97×162cm
2. 공존하는 시간: 서사의 확장
하나의 그림이 반드시 하나의 이야기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중세의 종교화처럼 하나의 화면 안에 다양한 시공간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도시의 모습과 삶, 역사 등 저마다의 이야기는 각각의 파편으로 분절되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세심하게 배치되고 연결되어 서로를 향해 확장된다. 그렇게 엮여진 서사는 복잡한 현대 사회의 다양한 층위를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동시에 관람자의 개인적인 해석과 사색을 환영한다. 개인의 경험과 감성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의미를 재구성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작품은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제시한다.

민정기 MIN, JOUNG-KI
청풍계
2019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황재형 HWANG, JAI-HYOUNG
2018, In My Heaven
1997-2012, 2018
캔버스에 머리카락
162.1×227.3cm

박능생 PARK, NEUNG-SEANG
톨레도-스페인
2021
종이에 수묵, 채색, 토기
150×214cm
3. 이성과 반이성의 경계: 잠재적 구상
우리의 상상은 우리가 경험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냉철한 관찰력과 감성적 상상력의 조화는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사실적 묘사를 통해 나타나는 일상적 대상들은 상상을 통해 낯선 맥락 속에 위치하거나, 서로 다른 차원의 이미지와 병치 되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정밀하게 묘사된 사물은 초현실적 장면마저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며 묘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익숙한 것들과의 낯선 조우는 관람객들에게 상상의 문을 열어주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구상미술이 지닌 시적 표현의 가능성과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다.

강위덕 KANG, WEE-DEE
더블 비전-diplopia
2024-2025
캔버스에 유채
130×210cm

설경철 SEOL, KYUNG-CHUL
음x색(from the score)1807
2018
종이에 아크릴
196×162cm

이석주 LEE, SUK-JU
사유적 공간
2016
캔버스에 유채
227.3×181.8cm

임철순 LIM, CHUL-SOON
우리 시대의 풍경
1993
혼합재료
227.3×545.4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