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순회전
오를랑 하이브리드: 아티스틱 인텔리전스
포항시립미술관은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 순회전 《오를랑 하이브리드:아티스틱 인텔리전스》를 개최한다. 신체로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적 내러티브를 담아내는 오를랑은 이번 전시를 통해 기술을 활용하여 물리적 신체를 다시 한번 가상의 공간에서 해체하고 결합하고 혼종한다. 자신의 몸이 예술을 활용하는 소프트웨어라고 말하는 오를랑은 변형된 가상의 신체를 활용하여 사회적 목소리를 예술적 실천으로 강렬하게 발화한다. 이번 전시는 기술이 가지는 무한한 장르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오를랑의 작품세계를 통해 기술 매체를 활용한 예술적 확장과 그 공생에 조우하고자 한다.
오를랑(ORLAN, 1947~)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거장으로 기존의 관습과 전통 속에서 주어진 이름을 거부하고 스스로 오를랑이라는 이름을 명명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견고히 하였다. 프랑스어에서 여성형, 남성형도 아닌 ‘오를랑(ORLAN)’이라는 새롭게 태어난 자신의 이름으로, 유전적으로 자연이 준 신체를 저항하고 변형하여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신체 예술의 장르를 개척해 냈다. 특히 1990년대 3년간 뉴욕, 파리 등지에서 아홉 차례에 걸친 <성형수술 퍼포먼스 시리즈>는 작가의 대표작이다. 생중계로 자신의 얼굴과 몸을 변형하는 수술 퍼포먼스를 통해 ‘미(美)’에 대한 개념과 금기시되었던 신체의 훼손이라는 실험을 통해 저항하는 몸, 주체적인 신체성에 대해 윤리적, 예술적 논의를 환기하며 이를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오를랑의 작업은 자신의 물리적 육체에만 한정 짓지 않는다. 신체의 DNA, 유전자에도 관심을 확장한 작가는 더욱이 생명공학, 해부학 등을 기술과 활용하여 자신의 신체가 다시 한번 기술을 통해 재명명되는 예술적 활동을 이어나간다. 기술로 확장된 오를랑의 활동들은 다변화된 주제로 자신을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작업은 남성과 여성, 서구와 비서구, 자연과 인간 등 이분법적으로 주어진 사회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키며, 기존의 오랫동안 관습화된 이미지의 기호들을 해체시킨다.
《오를랑 하이브리드:아티스틱 인텔리전스》는 신체를 기술로 재매개하고, 다양한 장르로 확장하는 오를랑의 작업을 통해, 융복합 기술이 새로운 기술의 습득에만 급급한 것이 아닌, 예술의 표현 매체이자 동시에 공생하는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기술로 모든 것을 결합하여 하이브리드가 된 오를랑의 신체는 시공간을 넘어 완전한 자유를 부여받는다. 작가 자신이 예술을 표현하는 창구이자 플랫폼이 된 오를랑은 포스트휴먼, 젠더, 기후 위기 등 여러 주제를 신체와 기술을 연결하여 결합해 낸다. 때로는 연결 지점이 없다고 느껴지는 이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은 주어진 사회제도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 공생이라는 화합의 메시지를 오를랑의 신체를 통해서 격자무늬처럼 촘촘하게 발화한다. 이처럼 촘촘히 짜인 작품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심연의 목소리는 결국 하나로 귀결한다.
“나는 나의 몸을 예술에게 바쳤다”(I have given my body to art)
이 처절한 외침, 혁명과도 가까운 선언을 통해 이번 전시는 다시 우리에게 반문한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바치고 있는, ‘오를랑’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가?
오를랑(ORLAN)_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과재활용 재료와 물건으로 만든 새로운 로봇_2024_디지털 포토 몽타주_100x140cm
오를랑(1947~)
오를랑은 1947년 프랑스 생테티엔 출생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거장이다. 생테티엔의 미술학교를 다녔으나 그만둔 뒤, 1964년 17세의 나이로 <느리게 걷기>(1964) 퍼포먼스로 데뷔했다. 프랑스의 여러 지역을 걸어 다니며, 일방통행인 골목길에서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일부러 느리게 걷는 퍼포먼스를 통해 현대사회를 꼬집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같은 해 <신체-조각> 시리즈인 <자기 자신을 출산하는 오를랑>(1964)은 자기 성기에서 마네킹을 출산하는 사진 작품으로 남성도 여성도 아닌 마네킹을 이용한 자아라는 존재를 낳는 행위를 통해 오를랑의 작가로서의 존재와 정체성을 공고히 하였다.
특히 1990년대 3년간 뉴욕, 파리 등지에서 아홉 차례에 걸친 성형수술 퍼포먼스 시리즈 <성(聖) 오를랑의 환생>(1990-1993)은 그녀의 대표작이다. 서구의 이상적인 ‘미(美)’라고 일컫는 비너스, 모나리자의 턱, 이마와 같은 신체 부위를 자신의 얼굴에 합성시키고, 국소 마취를 한 작가가 직접 성형수술을 지휘하는 성형수술 퍼포먼스는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이처럼 파격적이고 가학적인 방식의 퍼포먼스로 인해 신체의 훼손과 자아 주체성에 대해 격렬하게 주장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녀는 자기 작품을 신체 예술(body art)이라는 장르로 한정 짓기를 거부하고, 카널 아트(carnal art)로 선언하였다. 카널 아트란 단순히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부여된 관습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신체를 거부하고 레디메이드(기성품)로의 변형가능한 신체를 통해 주체적 자아를 활용하는 선언적인 예술, 행동으로서의 예술의 목소리를 담아왔다. 이러한 파격적인 그녀의 퍼포먼스, 작업 활동들로 그녀는 페미니즘 예술가, 물질성에 기반한 신체 예술의 대가로 흔히 알려졌지만, 그녀는 일찍부터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작업을 해왔다.
그녀는 인터넷 이전 프랑스의 통신 서비스 단말기인 미니텔을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고, 최초의 현대미술 온라인 잡지인 아트-엑세스-메거진(Art-Accès Revue)을 여러 작가들과 함께 창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자기 모습을 가상의 공간에서 변형한 디지털 콜라주 작업, 생명공학, 비디오 게임, 증강현실 등을 이용하여 포스트 휴먼적 정체성을 견고히 해왔다. 최근에는 포스트 휴먼을 넘어 전 지구적 미래의 기후 위기에 처한 동물들과 인간의 신체 확장에도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며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담을 작업을 보여주었다.
오를랑은 프랑스 문화부 장관의 문화예술 국가공로훈장을 세 차례(2003, 2010, 2020) 받았으며, 이탈리아 및 모나코 등에서 올해의 여성 특별상 등을 수여받았다. 또한 퐁피두센터는 <예술가의 키스>(1997)를 ‘20세기의 걸작 100’으로 선정하였다. 작가의 작품은 퐁피두센터, 미국게티 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오를랑(ORLAN)_멸종 위기에 처한 스라소니와 재활용 재료와 물건으로 만든 새로운 로봇_2024_디지털 포토 몽타주_100x160cm
오를랑(ORLAN)_오를랑은 조르주 상드와 혼성화하여 그녀의 각성을 이어갑니다_2024_디지털 포토 몽타주_130x179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