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
2025-12-16 ~ 2025-12-28
최덕화
무료
070-8095-3899
이것은 사라진 골목에 대한 이야기다.
4년 전 춘천의 오래된 골목인 ‘소양로 기와집골’이 사라졌다. 기와집골은 춘천시 옛 부촌이자 집성촌이었던 지역으로 ‘주택재건축정비사업’ 추진에 따라 2021년 완전 철거되었으며, 현재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한때는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수많은 일본 관광객이 몰려들었던 이곳은 한동안 예전 시대의 골목 풍경을 간직한 모습으로 연로한 어르신과 무성한 풀, 지붕을 가릴 만큼 자라난 오동나무, 대추나무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그리움을 그리는 최덕화작가는 2016년 소양로 기와집골의 오래된 집에서 100일간 개최되었던 공공미술에 참여한 이후 이 공간에 대한 애착을 토대로 드로잉 및 사진 등을 통해 아카이브하는 작업을 지속해 온 바 있다.
철거 이전 기와집골의 집들에서 채집한 창틀, 버려진 생활용품, 부서진 가구 등과 동네를 기록한 스케치들뿐만 아니라, 점차 사라져가는 창호지 무늬, 바닥재의 패턴, 대문 문양, 옥상 난간의 무늬, 길가의 풀꽃 모양 등을 사진과 도안으로 기록해 놓았다.
소양강 둑방길 아래에서 유년을 보냈던 작가는 그동안, 자연과 함께 놀았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토대로 그리운 풍경의 문양을 창작하여 그림으로 그리고, 리놀륨 판화로, 도자공예로 다양한 매체의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2019년에는 약사리 골목골목의 무늬들을 채집하고 기록한 후, 전시까지 진행한 <약사리 무늬>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사라진 골목인 소양로 기와집골을 주제로 설정하고 기와집골 집과 골목의 풍경에 대한 무늬를 창작함과 동시에 모션그래픽 영상 작업으로 작업매체의 확장을 시도해보고자 하였다.
최덕화 작가의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애착은 어린시절을 보낸 사농동의 집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근원의 풍경에 대한 작업으로 ‘슬픔’과 ‘기쁨’ 양면의 감정을 담은 유년의 그리운 집에 대한 200호 유화 작품을 2점 출품하여, 전시장 가운데 세워놓았다. 이와 함께 무늬 작업에 대한 아카이브를 보여줄 수 있는, 소양로 기와집골 사진들을 실제 옛 골목의 주소의 위치에 배치하여 한눈에 볼 수 있는 벽면을 구성하였으며, 사진과 스케치를 담은 사진첩도 입구에 마련해 놓았다.
전시 후에는 소양로 무늬들과 옛 주소들을 기록한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이는 과거의 소양로 골목에 대한 무형의 가치를 기록하는 것으로, 비단 기와집골을 기억하는 이들만이 아닌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사라져가는 골목들을 상기해 볼 수 있는 작업물이 될 것이다.
집으로 가는길-
여름이 오기 전 할머니는 토종 백합을 심으셨다. 흰백합은 크고 향이 좋았다. 밤하늘에 흰꽃가루가 날리듯 향이 퍼지곤 했다. 매년 여름, 우리 집 포도는 마당을 한가득 채웠다. 나는 우리 집 포도가 세상에서 가장 달고 좋았다. 포도나무 그늘 아래에는 우리만의 작은 수영장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새벽 같이 받아놓은 물이 오후가 되면 미지근해지고, 우리는 팬티만 입고 고무대야에서 물놀이를 했다. 수박씨를 멀리 튀기며 웃음이 대문 밖까지 넘어가던 오후들. 파라솔 의자가 데워지는 온도까지 기억난다. 마당의 수돗가는 또 다른 놀이터였다. 물 호스를 납작하게 눌러 길게 길게 쭉 뻗어나가는 물길을 만들면, 대문 앞 또또집 마당까지 시원해졌다. 햇살이 좋은 날엔, 반짝이는 빛 사이로 물을 뿜어 무지개를 만들곤 했다.
겨울에는 눈이 오면, 차바퀴 체인 다는 소리에 눈을 뜬다. 창밖을 보기 전부터 설레던 날들. 증조할머니는 마당을, 할아버지는 골목을 쓸고 엄마는 부엌에서 분주했다. 우리는 내복만 입고 나가 눈 위를 스케이트 타듯 문질렀고, 결국 감기에 걸려 나가지도 못하고 유리창에 호호 불어 그림을 그린다. 가끔은 마음이 얼어붙던 날들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설명할 수 없던 슬픔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쌓아 올렸다.
앵두, 밤, 대추. 짧게 피고 짧게 사라지는 열매들의 계절이 지나가면, 할아버지는 마루에서 군밤을 구워 기다리셨다.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전시하면 뭐 주는데?” 하고 늘 궁금해하셨던 할머니는 매일 네잎클로버를 내 머리맡에 올려두고 가셨다. 나는 그렇게 성장했다.
2016년 여름, 소양로 기와집골-
나는 사라질 풍경들을 하나씩 기록했다. 건물 사이에 있는 작은 타일, 집집마다 다르게 생긴 담장들, 녹이 슬고 구부러진 창살, 골목 깊숙이 들어가야 보이는 작은 마당, 누구든 볼 수 있지만, 아무나 볼 수 없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보물 같은 무늬를 발견하고 기록한다.
(최덕화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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