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운 작가는 물질주의와 효율 중심의 사회 속에서 ‘개인’이 지닌 본래의 가치에 주목한다. AI와 자본, 경쟁 논리가 일상을 압도하는 시대에, 인간은 점점 더 건조하고 파편화된 하루를 살고 있다. 그는 이러한 환경에 침식되지 않고 작업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되찾고자 한다. 이번 전시 〈우리의 길 위에서〉는 ‘나’와 ‘타자’가 진정한 신뢰와 실천을 통해 ‘우리’로 도달하는 과정을 다룬다.
작가는 이전 전시 〈거기 있다〉(2023)에서 ‘우리의 가능성’을, 〈너의 변수를 대하는 나의 자세〉(2023)에서는 관객 참여 설치를 통해 ‘연대’의 힘을 시각화했다. 이후 그의 관심은 추상적인 ‘연대’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구성하는 1:1 관계, 즉 ‘나’와 ‘너’라는 조건과 실천적 과정으로 확장되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러한 실천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면으로 풀어내며 관람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고충환 (미술평론) 발췌
고충환 평론가는 김여운의 작업을 “인간의 도구화에 반대하는 실천 논리, 존재의 삶의 현실을 반영하는 참여미술,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도구로서의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상황주의 미술, 행동주의 미술, 정치미술과 접맥된다”고 평한다. 특히 그는 작가가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견지하고 있는 점에서 이상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작가의 회화는 재현을 넘어 ‘현실 자체’로 추체험되기를 의도하며, 재현과 현실의 관계를 재정의하려는 또 다른 기획의 축을 형성한다. 평면작업과 더불어 설치작업은 이러한 관계적 사유를 공간으로 확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평론가는, 작가가 현실 자체와 재현된 현실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재정의하려는 또 다른 기획의 한 축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런 만큼 향후 작업에서 그 전개를 지켜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라고 말한다.
평면작업과 함께, 일련의 설치작업이 있다.
<너에게로 가는 길>을 보면, 무대를 가로지르는 길의 중앙에 게이트가 서 있다. 세로로 길게 서 있는 게이트 상단에는 천이 덮여 있는데, 그 천에는 각 너에게로 가는 길, 우리에게로 가는 길, 그리고 나에게로 가는 길이라는 영문자가 자수로 수놓아져 있다. 길의 양쪽 끝에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걷다가 게이트의 발판을 딛고 서서 포옹하면 종이 울리는, 그러므로 혼자서는 종을 울릴 수 없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를 위한 설치작업이다. 너에게로 가서 우리를 이루는 길이 결국 나에게 이르는 길이라는, 너를 향한 이타심이 결국 나를 찾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게이트는 그 길에 이르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너라는 관문을, 우리라는 통로를, 너와 나를 가르는 경계를 상징한다. 작가는 감지 센서와 같은 자동장치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이 설치작업을 만들었는데, 인간의 도구화에 반대하는 평소 관념이 반영된 것이어서 그 의미가 크다.
개인적인 서사(상상력을 포함한)와 사사로운 이야기에 바탕을 둔 미시 서사(작은 이야기)가 시대의 주류로 부상하는 시대에 인간성에 대한 여전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는, 예술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 입장은 새삼스러운 만큼이나 그 의미가 오히려 크게 와닿는 부분이 있다.
이런 인간성에 대한 신뢰에 바탕 한 이상주의자로서의 면모는 주제에서도 확인되는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너에게로 가는 길(2025),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하여(2024), 그리고 너의 변수를 대하는 나의 자세(2023)와 같은. 주제에는 하나같이 내가, 네가, 그리고 우리가 등장한다.
나는 네가 없이 설 수 없고, 너는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정의될 수 있다.
그렇게 주체와 타자가 서로를 증명하는 관계 속에서 우리라는 관계가 비롯한다. 그리고 마침내 연대도 가능해진다. 그렇게 작가는 관계성 상실 혹은 같은 말이지만 인간관계의 상실이라는 징후와 증상을 앓는 시대에 다시금 관계의 회복 가능성을 묻고 연대의 가능성을 묻는다. 그리고 너에게로 가는 길은 우리를, 관계를, 연대를 전제로 나에게로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 타자와의 관계 그러므로 이타주의를 매개로 자기 정체성을 묻는 것인데, 여기에는 진정한 자기(불교에서의 진아)를 찾는 자기반성적 사유가 있고 실천이 있다.
〈Action (실천)〉, Oil on linen, Cotton mat, Museum acrylic, Solid wood frame, 39(l)x44(h)x7.5(d)cm,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