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전시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전시상세정보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김동영: Èmbracing - 품다

  • 상세정보
  • 전시평론
  • 평점·리뷰
  • 관련행사
  • 전시뷰어



김동영: Èmbracing - 품다
2025.11.26-12.01
충북갤러리 |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2층




김동영, Èmbracingㅡ품다, 2025, Mixed media on Canvas, 30cmx90cm


김동영, Èmbracingㅡ품다, 2025, Mixed media on Canvas, 30cmx60cm



Artist' note
Èmbracing –품다

나의 작품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그래서 끊임없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대화의 연속이 작업의 시작이며 영원히 끝나지 않는 노래이다. 다시 말하면 나의 작업 과정은 평면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독백으로 또 하나의 공간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작품의 화면 위에 인간 욕망 즉 행운의 상징성으로서 네잎클로버가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내 작업에서의 네잎클로버는 인간의 외적 욕망의 상징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 존재하는 가능성과 성찰의 시각적 메타포이다.
인간의 욕망과 신의 마음이 서로를 품을 때 신비가 나타난다.- 즉 질서(cosmos)이고 조화이다. 내 작업은 이들 존재들이 서로를 품으면서 교감을 생성하고 - 이러한 현상 속에서 작업은 형상화되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과 탐구의 과정이다.



김동영, Embracing-품다, 2022, Mixmedia,193.9x259.1cm



Review
존재의 숨결, 기(氣)의 언어 – 김동영 회화의 새로운 실험

2025. 11
이호영 | 미술학 박사·화가


1. 숨 쉬는 화면, 생명의 리듬

자유롭게 공간을 지휘하는 선들이 있다. 흩뿌려진 듯 무작위로 흘러가는 가는 선들과 화면의 중심축을 이루는 힘찬 선, 일필휘지(一筆揮之)의 기세, 거침없이 그려진 선들이다. 이를 떠받치는 것은 흰 공간이다. 선의 흔적이 페이드아웃(fade out)되며 흩어지는 그 자리—흰 눈 속으로 사라지는 풍경처럼—공간은 비어 있으면서도 가득 차 있다. 여린 선들은 이 공간이 지탱하는 힘으로 되살아나고, 화면은 숨 쉬듯 고요한 리듬을 이룬다.

그 선들이 태어난 곳은 네잎클로버다. 클로버의 형태로부터 파생된 원형적 흔적, 살아 있는 식물의 형에서 비롯된 선들은 독립적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여리고 가늘지만 강렬하고 단단한 생명력을 품은 선들—거친 바람을 견디며 솟아오르는 듯한 선의 궤적은 은빛의 공간 위로 흐르며, 단단한 표면 아래 미세한 결을 품고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이 화면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교감이 서려 있다. 작가는 그 관계의 장(場)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형태’와 ‘호흡’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라는 언어로 존재와 세계의 대화를 이어간다. 회화는 단순한 재현의 수단이 아니라 새로움에 대한 지속적 실험, 곧 변화하는 육체의 상태로 존재하는 행위다. 작업은 매 순간 다시 태어나는 몸처럼 변주되고 갱신되며, 그 과정 속에서 삶과 신앙, 세계를 향한 존재의 태도를 새롭게 정립해 나간다.


2. 선과 기(氣)의 율동

이 회화에서 선은 단순한 조형 요소가 아니라 기(氣)의 흐름을 시각화한 생명의 흔적이다. 방향을 바꾸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선의 움직임 속에는 호흡의 리듬과 내면의 떨림이 깃들어 있으며, 여백은 그 리듬이 잠시 머무는 숨결의 자리다. 선은 개인적 감정을 넘어 자연의 숨결과 인간의 내면을 함께 품고, 살아 있는 듯한 진동으로 세계와 인간이 공명하는 시간의 흔적을 남긴다.

붓질에는 공감의 열망이 있다. 그것은 타자와 세계를 향해 손을 내미는 행위이자, 함께 숨 쉬고자 하는 몸의 언어다. 선은 단순한 시각적 경로가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는 기의 흐름이며, 이러한 선의 운동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닮아가며 조화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에너지로 확장된다.


3. 네잎클로버의 구조와 시선

네잎클로버는 작가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이끄는 모티브다. 전통적으로 행운의 상징이었던 이 식물은 여기서 훨씬 더 사유적이고 존재론적인 기호로 변모한다. 가느다란 줄기를 가진 여리고 작은 클로버는 언제나 군집을 이루지만, 작가는 그 무리 속 단 하나의 개체에 시선을 머문다. 형태는 완결되지 않은 채 미완의 상태로 남는데,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홀로 서는 인간의 조건을 은유한다.

클로버의 군집은 사회적 구조를, 그 안의 하나는 작가 자신을 상징한다.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고립된 존재, 품고 있으면서도 분리된 존재—세계는 이러한 역설 위에 놓인다. 화면의 질서에서 ‘하나’로부터 ‘여럿’이 생성되고, 회화적 사유는 그 틈에서 확장된다. 여린 몸으로 비바람과 추위를 견디며 피어나는 생명의 강렬한 힘에 주목하는 작가의 욕망이 선의 생명성을 만든다. 그래서 형태는 사라지고, 남는 것은 선이다. 그 선들은 여리지만 힘찬 기(氣)의 떨림을 품는다.

그 선은 곧 여럿을 잇는 관계의 선이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관계—사람과 사람, 세계와 주체, 타자와 주체, 자연과 인간—를 잇는 보이지 않는 연결선이다.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서로 얽힌 그 선들은 때로 억압이자 동시에 지금을 가능하게 하는 실존의 관계로 작용한다. 작가가 클로버에 시선을 두고 형태를 지우며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이유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관계의 힘, 즉 존재를 이어주는 선의 기(氣)를 그리기 위함이다.


4. 신앙의 시선과 ‘품음’의 미학

클로버의 선택에는 신앙적 시선이 작용한다. 「Embracing – 품다」라는 명제는 연약한 인간을 품는 신의 시선에서 비롯되었다. ‘품다’는 신이 인간을 포용하는 행위이자, 인간이 타자를 향해 응답하는 태도다. 작품 속 미완의 클로버는 그 품음의 흔적이다. 완전하지 않기에 품을 수 있고, 여리기에 관계를 맺는다.

이 신앙적 사유는 회화 전반에 내재된 ‘기(氣)의 윤리’와 맞닿는다. 기는 생명의 근원적 에너지이자,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호흡의 흔적이다. 화면은 그 숨결이 머무는 자리이며, 신의 품음과 인간의 응답이 만나는 시각적 공간으로 작동한다. 회화는 형식적 예배의 제단이 아니라, 신과 인간이 서로를 품는 사건으로서의 회화다. 한 줄기 클로버는 작가 자신의 초상이자, 신이 바라보는 인간의 형상이자, 인간이 신을 향해 되돌아보는 존재의 이미지다. 결과적으로 이 회화는 ‘신이 인간을 품고, 인간이 또 다른 존재를 품는’ 순환적 은총의 구조를 시각화한다.


5. 다중 코드와 언어의 중첩

작업의 세계는 서로 다른 기호와 언어가 겹쳐 쌓이는 다중 코드의 구조를 지닌다. 하나의 언어 위에 또 다른 언어가 덧입혀지고, 각 층위의 리듬이 충돌하거나 공명하는 과정 속에서 회화는 복합적 발화체로 변한다. 작가는 고정된 해석을 거부하고 예측 불가능한 생성의 순간 속에서 회화를 새롭게 연다.

선은 미리 계획된 형식이 아니다. 선은 그어지는 순간, 이전의 선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또 다른 선을 불러온다. 작가는 이 부름에 응답하듯 화면과 대화하고, 그 안에서 시간의 리듬과 호흡의 결을 이어간다. 선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작가의 몸과 의식, 그리고 화면이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언어다.

이 과정에서 회화는 단일한 서사나 형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선과 점, 여백과 질감이 서로를 침투하며, 각각의 층위가 하나의 기호이자 또 다른 의미의 문법으로 작용한다. 표면에 남겨진 흔적은 물질의 자취가 아니라 작가와 화면이 주고받은 대화의 숨결이며, 그 대화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잇는 진동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다중 코드’는 단순한 시각적 중첩이 아니라 작가·선·시간의 상호응답을 뜻한다. 선은 부름이고, 작가는 그 부름에 응답하는 자이며, 그들의 대화 속에서 회화는 하나의 생명체로 자라난다. 흑백의 화면 위에 얇고 두꺼운 선들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리듬은, 보이지 않는 감정과 시간의 층위를 드러낸다.

이때의 ‘실험’은 불확실성을 향한 용기이자 스스로를 갱신하는 몸의 움직임이다. 회화는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매번 다른 방향으로 호흡하고, 새로운 관계를 생성하며, 자기 자신을 다시 써 내려간다. 이로써 작업은 정지된 구조가 아닌 끊임없이 되기를 반복하는 생명의 장(場)으로 존재한다.


6. 색, 선, 그리고 여백의 상호작용

은회색의 공간 위에 펼쳐진 검은 선들은 농담의 깊이를 지닌 기의 흔적처럼 퍼져 있다. 이번 회화는 색채가 주도하는 화면이 아니라 선의 방향성과 여백의 호흡이 중심을 이루는 세계다. 모노톤의 흑백 속에서 작가는 색의 부재가 아니라 잠재된 울림을 그린다.

두 개의 캔버스가 완전히 결합되지 않은 구조는 관계 속 간극을 시각화한다. 그 틈은 단절이 아니라 회화적 에너지가 생성되는 근원이며, 선은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공간을 잇는 양가적 기운을 품는다. 은회색과 흰색의 표면은 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고, 농담의 차이는 시간의 결을 드러낸다.

단색조(monochromatic)의 화면은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을 지닌다. 색은 절제되어 있으나 때때로 미묘한 변주로 스쳐 간다. 절제된 색의 움직임은 존재의 숨결처럼 느껴지며, 은회색의 층위 속에서 삶과 신앙, 물질과 영혼이 교감한다. 여백은 단순한 비어 있음이 아니라 존재의 호흡이 잠시 머무는 자리이며, 회색은 존재와 비존재를 이어주는 중간계의 색이다.

색·선·여백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공명하며 호흡의 리듬을 형성한다. 그 리듬 속에서 표면 아래의 생명력은 고요히 진동하고, 그 진동이야말로 김동영 회화를 움직이는 근원적 에너지다.


7. 존재의 숨결과 회화의 언어

작가에게 작업은 회화 그 자체의 언어를 다시 실험하는 행위다. 회화란 단순히 보이는 세계를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고 발화하는 하나의 몸이다. 화면은 외부 대상을 묘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자신을 드러내는 통로, 즉 진리의 현현(顯現)이 이루어지는 자리로 작동한다.

여기서 ‘顯現(현현)’은 숨겨진 것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그것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존재가 ‘기(氣)의 흐름’을 따라 새롭게 태어나는 생성의 순간이다. 회화는 이 현현의 장(場)으로서, 진리가 물질과 색, 선, 여백의 관계 속에서 하나의 호흡으로 피어나는 공간이 된다.

작가는 그 흐름을 선과 여백, 그리고 미세한 진동으로 포착한다. 화면은 이 진동의 흔적을 간직한 채,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시간의 켜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회화는 외적 재현이 아니라 표현 그 자체이며, 표면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보이지 않는 의미들의 현현(顯現)이다.

이 표현은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존재와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언어화하는 사유의 과정이다. 붓끝에서 흘러나오는 선은 단순한 제스처가 아니라 시간과 감각, 그리고 무의식의 흐름이 얽힌 하나의 언어로 작동한다. 표면 아래의 미세한 흔들림이야말로 회화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만든다.


8. 보이지 않는 질서, 진동하는 생명

작가의 화면은 표현으로서의 선과 색, 그리고 그 아래에서 고요히 진동하는 생명의 힘을 드러낸다. 표면의 질서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숨 쉬며, 그 진동이야말로 회화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회화의 중심에는 존재와 기(氣), 그리고 관계가 있다.

동양적 여백과 서구 추상의 물질성이 교차하는 그 공간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서로의 경계를 흔들며 하나의 새로운 질서로 귀결된다. 그 질서 속에서 회화는 단지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생명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장(場)으로 확장된다.

김동영의 예술은 정지된 형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움을 향해 도전하는 생명의 몸이다. 그 화면은 신의 품음과 인간의 응답이 교차하는 숨결의 자리이며,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顯現(현현)의 장(場)이다. 이곳에서 회화는 단지 시각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와 인간, 신과 생명이 서로를 인식하고 공명하는 하나의 호흡으로 변한다. 작가의 예술은 우리가 다시 세계와 관계 맺고, 서로의 생명을 알아보게 하는 깨어 있는 회화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


김동영, Embracing-품다, 2022, Mixed media on Canvas, 193.9x130.3cm


김동영, Embracing-품다, 2022, Acrylic on Canvas, 130.3x97cm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