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갤러리 도스 기획
이도소 ‘0.무의 실패 a failure of nothingness’
2025. 03. 05 (수) ~ 2025. 03. 11 (화)
1. 전시 개요
■ 전 시 명: 갤러리 도스 기획 이도소 ‘0.무의 실패 a failure of nothingness’展
■ 전시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갤러리 도스 제1전시관(B1F)
■ 전시기간: 2025. 03. 05 (수) ~ 2025. 03. 11 (화)
2. 전시 서문
기억을 꺼내는 방식
최서원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기억의 부재는 시간이 흐르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령 좋은 곳을 다녀와서 좋은 물건을 갖게 된 기억,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처음 샀던 기억, 너무 많이 사용하여 닳고 닳은 사물에 담긴 기억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수십년간 이어져 오는 그날의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특수한 것이다. 속절없이 지나치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희석되어 가는 순간들을 조금이나마 붙잡아 두려 애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곁에 남아있는 감성은 물리적인 섭리에 따라 결국 사라진다. 이도소 작가는 간직한 사물에 당시 기억을 투영하여 불가피한 소멸을 회상하고 고유의 예술적 방식으로 기념한다. 작가가 만지며 생기는 적당한 오염과 훼손은 온전한 모습으로 잔재하지 못하는 흔적을 거듭 새기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어 마침내 시중에서 판매되는 여느 기성품이 아닌 절대적인 작가의 ‘것’으로 다시 탄생한다.
시간 앞에서는 사람도 사물도 영원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구적으로 구속할 힘이 없는 이들은 허우적댈지언정 기억의 끄트머리라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러한 자기 자신의 그리고 모든 이들의 모습은 부질없는 낭비일지 모른다. 하지만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기억은 만져지는 특정한 물건으로 비추어지고 그 물건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그렇게 과거의 추억으로 지금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촉감으로 얻고자 하는 사물의 요철과 요철조차 무뎌진 매끄러운 표면은 하나의 덩어리를 유지하며 점점 더 오래되어 가는 세월과 반비례할 수 있도록 추상의 관념으로 점철된다. 작가는 추억하는 물건을 만질수록 주변에 융기되어 있던 기운들이 모여 다시 변화하고 또 모습을 바꾸는 과정에 몰입한 채 비시각적인 것을 본인의 화면으로 시각화한다. 동시에 사물의 입장을 대변하여 보이지 않는 무(無)에서 모양을 갖춘 형(形)으로 달리하는 심정을 객체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태초에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은 공백은 모종의 이유로 제작되어 가시적으로 생산된다. 그들은 정체성을 표상할 수 있는 자격도 선택을 직접적으로 주장할 권리도 없이 그저 자리하며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여받은 존재성에 노출된다. 무(無)에서 또 다른 분야인 공포는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는 심리 현상으로 강렬하고 자극적인 인상을 각인시킨다. 별도의 생김새 없이 풍부한 상상력을 만들며 창조적 두려움을 조성하기에 이러한 감정은 더욱 극복할 대상이 된다. 작가는 자신이 느끼는 공포에 임의로 형(形)을 구축하여 불안함을 해소한다. 없음에서 있음을 가공하는 행위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적인 안정감을 선사한다. 이렇듯 무로 남음에 실패한 형의 존재는 작품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나아가 단편적인 외양만으로 단정할 수 없는 초월적 세계관을 가지며 주체의 자주성을 갖춘다.
누구든 하나쯤 결코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이 사물이든 기억이든 또는 사물에 내재한 기억이든 나에게 아주 각별하여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값진 존재일 것이다. 작품을 보고 있자면 기억의 여러 파편이 한데 모여 나는 아직 건재하다고 주장하는 소리 없는 외침을 듣는 듯하다. 작가가 어루만지는 손길에 잠식되어 지금도 그러하듯 앞으로도 침묵 속 발자취를 꾸준히 쌓아올 물건들은 흘러가는 현실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예술이 허용한 자유로부터 기억과 감정을 지속적으로 공유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을 통해 형태가 가진 것들이 내포하는 동적인 일렁임을 상기해 보기를 바란다. 아울러 작가가 감각하고 헤아리는 바를 마음 깊숙이 함께 느껴보기를 바란다.
먹고 기도하고 죽여(어)라
멸치 머리 및 혼합재료, 22×7cm, 2024
사건의 증거들
장지에 채색, 112×145.5cm, 2024
쇠로 만든 혀
장지에 채색, 20×20cm, 2024
신뢰할 것을 찾고 있습니다
장지에 채색, 130×162cm, 2024
행복한 나의 집
장지에 채색, 53×72.5cm, 2025
낙화의 증거들
장지에 채색, 130×162cm, 2025
3. 작가 노트
[0]
흘러가는 시간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뿌옇게 흐려지게 만든다.
과거의 모호한 사념에 휩싸여 괴로울 때면,
나는 내게 소중한 물건들을 만지작거리거나, 가만히 바라보곤 한다.
그럴 때면 흘러간 기억과 감정을 비롯한 온갖 관념적인 것들이 뭉쳐지며 물건을 재구성한다.
수십 개의 똑같은 복제품이 존재하는 공산품일지라도
잔 기스와 약간의 망가짐, 손에 익은 감촉과 어떠한 기억들을 통해 나만의 것이 된다.
이미 없어진 시간도, 행복했고 슬펐던 기억들도 모두 이곳에 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을 늘 온전히 붙잡지는 못했다.
사물에 달라붙은 과거의 흔적들은, 흐릿해져 가는 시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완전한 변화를 거듭하며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기 때문이다.
흘러가 버린 것을 붙잡으려는 헛된 몸짓-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잡으려는 불완전한 몸짓-
사물이 넘쳐나고, 모든 사물에는 유령이 붙어있다.
0. 무의 실패
존재란 불편하고 서글픈 것들이다.
無(무)에서 튕겨 나와 形(형)을 갖게 된 것들.
무의 실패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출생의 불편함도, 존재의 불쾌감도-
形(형)을 가지게 된 나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함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또 다른 유형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며
단단한 요새를 구축하려 노력했다.
반짝이는 금속은 화폐가 되고,
화폐는 울타리가 되고,
울타리는 안락함이 되었다.
나는 이젠,
더는 無(무)의 시절을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유영하던 무의 공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의 공간으로 뒤바뀌었고,
나는 형태를 가지지 못한 것을 인식할 수 없는
불행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형상을 통해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생각을 통해 또 다른 형상을 만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존재를 만들고 번식시키며,
삶을 버티려 노력하고 있다.
4. 작가 약력
이도소
E-mail: edoso@naver.com
Instagram: @werovo_pepe
학력
2021 동대학원 한국화 전공 석사
2019 세종대학교 한국화 전공 학사
개인전
2025 <0.무의 실패>, 갤러리 도스, 서울
2023 <빈-껍데기 핥기>, 공간 루트, 서울
단체전
2024 <아시아 현대미술청년작가 공모전>, 세종미술관, 서울
2024 <소리 없는 소리>, Gallery The ARTE, 청담
2022 <BLACK Group Exhibition>, Artspace H 갤러리, 서울
2021 <파지> <배제>, 시민청 갤러리, 서울
2020 <新표류기:액체화 된 세계, 유동하는 개인>, 올댓 큐레이팅, 서울
2019 <창원 청년 아시아 미술제 특별전: 쌀롱>, 창원 성산 아트홀, 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