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_ 서울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_ 1.15-21
2월_ 대전예술가의 집 전관(1-8)_ 2.25-3.2
3월_ 사제동행전 대전갤러리_ 3.5-3.15
4월_ 홍성문화원_ 4.28-5.4, 自祝展
심플한 이미지의 상징적 세계
구본호 / 미술비평가, 예술학 박사
기산 선생의 심플한 이미지인 새는
우리 자신의 탐구와 사유의 깊이를 더해주는
존재가 되기도 하며,
우리의 일상성 회복을 위한
마음의 치유가 되기도 한다.
기산 정명희 선생은 금강(錦江) 작가다. 줄곧 금강을 나는 새를 그리기 때문이다. 잔잔한 물결이 마치 호수와 같다고 하여 금강을 호강(湖江)이라 부르기도 했다. 옛날에는 이런 강을 끼고 있는 마을 어귀에는 어디서나 장승과 솟대를 볼 수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솟대는 마을 초입에 잡귀나 잡병을 막을 용도로 세우기도 하며, 장승과 같이 신의 사자(使者)로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노릇을 했다고 한다.
오리는 하늘을 날면서 또한 물 안팎을 자유롭게 다닌다. 하늘을 날고 땅을 걸으며 물을 가른다고 하여 삼계(三界)를 내왕하는 영물이 오리다. 솟대 위에 앉는 새가 오리다. 오리는 물새다. 마을에 물이 부족하지 않게 해 주고 불이 나지 않게 막아준다고 믿었다. 오리는 마을의 재앙을 막아주는 평화주의, 또는 수호신 역할을 했다. 요즘같이 연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문제, 이탈리아와 하마스, 이란 전쟁 등 시끄러운 시기에는 오리와 같은 수호신이 생각난다.
선생의 작품에 나타난 새는 이런 연유와 같이 시작되었다.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있는 짐승, 신의 대리자이자 사자, 혹은 신이나 정령의 화신 같은 존재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존재가 오리다. 우리는 이런 상징성을 표현한 새 그림은 과거의 그림에서나 어느 전시에선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과거의 그림과 달리 선생 작품에서의 새는 오리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림은 대상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묘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선생의 작품 속 새의 형상에서는 종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새의 심플한 이미지를 통한 상징적 제시는 우리를 피안의 세계로 인도할 뿐이다.
그림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검은 면으로 새의 형태가 화면을 가득 채우기도 하고, 화면 가득히 채운 검은 면에 새 형태의 윤곽선이 흰색 선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흰색의 새 형태에 검은 먹선으로 외형을 다듬은 형태도 있다. 또 엷은 묵의 새 위에 짙은 묵의 새, 그리고 그 위에 흰색으로 0에서 9까지의 숫자가 모여 새의 모형을 만들기도 하는 등 선과 색이 모여 새의 겹이 보이기도 한다. 화면은 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여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림에서의 새들은 단순한 형태와 흑백의 단순한 색으로만 그려져 있다. 이러한 단순화, 추상화된 표현은 새를 특정한 종으로 규정보다는 모든 새가 가진 공통적 자유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보인다.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인해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해방의 상징으로의 존재이기도 하지만,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로 여겨지며, 영혼의 승화나 정신적 세계로의 이동을 상징이기도 하다. 다른 곳으로부터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는 전령과 소통의 상징 존재,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는 변형과 재탄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불사조 같은 새, 인간과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는 상징 존재 등 새는 여러 문화와 철학에서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존재로 나타낸다.
선생의 새는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라, 자유와 초월, 그리고 영적 성장을 상징하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선생의 그림은 인간이 세상 속에서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로서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과 닿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새의 단순성은 상징성의 강조와 함께 함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 감정의 은유로 사용된다.
기산 정명희 선생의 금강 또는 세상의 모든 강 위를 나는 새를 그린 그림들이 <자유의 여정(Freedom Trail)>이다. 새가 가진 자유로운 속성과 신의 대리자, 정령, 수호자와 같은 존재에 인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갈망을 연결 짓고자 했다. 요즘, 새 형상은 자유에 대한 갈망과 해방의 감정 상징에서 다른 형식의 설명이 가미된다. 신문지, 색종이, 숫자의 일부가 자리를 차지한다. 새의 상징적 의미는 인간의 정체성이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간결한 형태 속에 현대적 심리와 사회적 이슈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전의 선생은 금강을 빌려 새의 상징성을 강조했다면, 이제 그 상징성은 현대의 언어를 가미하면서 작가 자신에게로 돌리고 있다. 끝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가족, 유년 시절 운보 김기창 선생의 애정 어린 기도, 삶을 지탱하게 해 준 지인들의 고마움이 가득한 상징적 세계다. 물론 현대 사회의 불안, 고독, 혹은 자유를 향한 열망과 같은 감정이 간결한 형태 속에 사회적 이슈를 내포도 하고 있다.
알다시피 선생은 동양화를 전공했다. 운보 김기창 선생으로부터 사사를 받은 애제자였으니, 그림에 나타난 형태의 단순함과 여백은 동양사유의 근저라고 한다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작품은 극도로 단순화된 형태와 제한된 색조를 사용하고 있다.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기본적인 형상과 색채를 통한 본질에 다가가려는 동양의 자연주의 사상과 닮았다. 전통적 요소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추상미를 결합함으로써,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미감을 형성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자연과 인공적 요소가 혼합한 전통적인 수묵화의 형식과 의미의 확장이라고 해야 할까, 수묵화의 간결하고 자연스러운 표현 방식을 현대적 매체로 구현한 느낌을 준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기산 선생의 작업은 자연, 인간, 일상, 그리고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어선 새롭게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단순하고도 상징적인 새의 형태는 우리에게 고정된 의미를 떠나 각자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미술에서는 정체성이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이라는 점이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질 때가 많다. 작가의 의도가 작품 전체를 완성시키지 않는다. 관람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작품의 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산 선생의 심플한 이미지 새는 우리 자신의 탐구와 사유의 깊이를 더해주는 존재자가 되기도 하며, 우리의 일상성 회복을 위한 마음의 치유가 되기도 한다.
새의 등에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물건이 실려 있다. 자유의 상징, 수호의 상징, 감사의 상징이다. 새는 이런 상징성을 싣고 어디론 가에 도착할 것이다. 선생에게는 가족과 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에, 우리에게는 피안의 세계를 기리는 눈으로 다가온다. 기산 정명희 선생의 다음 작품은 어떨까? 사유와 치유가 금강의 잔잔한 물결 같은 배려로 스며들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기산 정명희(1945- ) 화백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한 한국화단의 원로화가입니다. 국전 초대작가로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와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한남대학 겸임교수를 역임했습니다. 개인전 90여회, 단체·초대전 500여회, 신수회와 한국화동질성전에 참여하여 한국화의 발전에 작은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현재 대한민국미술협회, 광화문아트포럼, 심향선생 선양위원회의 고문이며 대전광역시교육청 정명희미술관 명예관장으로 활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