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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GB24] (42) 전혜주 Hye Joo JUN

최은총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


전혜주: 삶과 뒤섞인 전쟁


최은총

‘전쟁 같은 삶’이란 표현이 비유적으로 쓰이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치열하고, 날마다 고분분투한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언제 우리의 삶에서 전쟁이 ‘같은’이란 말과 붙어 비유적인 것이 된 것일까? 그런데 2022년부터 전쟁이 귀환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정확히 말하면,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전쟁을 선포하고, 군대를 소집해 영토를 기반으로 공격을 감행하는 전통적인 전쟁 양식이 돌아왔다는 의미다. 1945년 종전된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한 전통적인 전쟁 양식이 도래한 것이다. 그 후 3년간 지속된 전쟁이 ‘휴전’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지금, 전쟁 같은 삶이란 의미는 어디에 가닿아 있을까. 과연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작가 전혜주는 전쟁의 흔적과 시스템을 역사적, 생태적인 관점으로 다층화하는 리서치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1) 가령, 2014년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2차 세계 대전의 흔적을 탐구했던 작업 <환각지>(2014), 군사적 목적이나 군중을 통제하는 데 사용되는 사운드를 토대로 작업했던 <Body Check>(2020), 1950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된 수천 여명의 희생자들의 유골 발굴 현장에서 채취한 토양과 그 속의 미생물을 연구한 과정을 공유한 <드러난 땅은 기억이 없다>(2022) 등 역사적 흔적을 토대로 시스템의 모순을 밝히고, 감춰진 진실을 발굴해 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202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Hummer>(2022)도 같은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다. <Hummer>는 표본 테이블 위에 올려진 식물과 꽃가루 표본, 그와 연관된 생태적 법칙을 밝힌 연구물과 테이블 주변에 두 대의 초지향 스피커를 조합한 작업이다. 이는 공기 중에 떠다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꽃가루와, 일상에서 사용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군사 무기 기술이 지닌 공통점을 드러내려는 시도다. 마치 실험실에서 성분을 추적하듯 보이지 않는 영역의 역학 관계를 드러내 보인다. 더불어 스피커는 실제 군중 무력화에 사용되는 방식으로 벌의 운동, 드론, 무인기 등 존재하지만 쉽게 감각하기 어려운 파동들을 인용 및 재구성한 사운드를 송출하고 있다. 이 구성들은 모두 우리도 모르는 새 일상에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영향을 끼치는 지점을 꼽아 관찰, 추적하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은밀하게 침투해 삶을 뒤흔드는 것들. 무색무취. 미세 크기. 비가청 영역의 소리. 이러한 것들을 모르는 사이 우리를 정향하고 있을지 모른다. 전혜주가 작고 사소한 것들에 주목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다시 ‘전쟁 같은 삶’이라는 표현을 돌아봐야 한다. 세계대전이라는 과오를 저지른 지 80년, 한 세기가 지나지도 않은 지금 무분별한 팽창을 향한 욕망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역사, 그리고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점을 앞세워 탈각되고 변색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전쟁 같은’을 말이다. <Hummer> 발표 이전, 작가는 <노란 경계>(2021)로 노란 우라늄 정제 가루와 꽃가루가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을 꼬집었다. 우라늄 원광을 채굴한 뒤 제분 및 정련 과정을 거쳐 노란색 가루가 되는데, 이를 농축하면 핵연료로 사용될 수 있다. 두 가루의 외형적인 차이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성을 지녔다. 그러나, 하나는 식물의 수분을 위한 것으로 생명과 삶의 표상일 때, 다른 하나는 광범위한 살상을 위한 핵무기의 원료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전쟁 같은(≒) 삶’ 처럼 ‘우라늄 가루 같은(≒) 꽃가루’란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아이러니 창출이 성립된다. 하나는 삶이고 하나는 죽음이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두 개의 노란 가루를 무관심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귀환한 전쟁에도 노란 가루가 있다. 바로 군수 무기에 빠르게 적용되고 있는 최신 기술 혹은 전쟁에서 사용한 기술을 빠르게 상용화해 만들어 내는 일상 물품이다. 특히, 현대 전쟁에서 주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건 드론이다. ‘드론전’이라는 용어가 도입될 만큼, 드론은 본인의 위치를 들키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진영에 효과적으로 침투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 드론이 더욱 문제적인 이유는, 드론이 출현할 가능성이 있는 환경 자체가 공포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많은 드론 및 무인기 피해자와 생존자는 작은 드론의 프로펠러 소리와 유사한 소리가 들리거나, 그러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환청에 시달린다고 한다. 심지어는 하늘이 파랗고 맑으면 드론이 날기 좋다는 사실이 떠올라 흐린 하늘이 더욱 좋아졌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작품 제목인 ‘Hummer’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뜻하는 만큼, 실제 군수 무기로 사용된다는 초지향성 스피커와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끼치는 영향력은 실제 전쟁의 무기 사용을 알게 될 때 더욱 강력해진다.2)

보이지 않는 영역에는 물리적 형태를 띠지 않는 ‘시스템’도 존재한다. 전쟁이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양 진영, 그 어느 때보다 뚜렷이 구분되고 마는 이분된 세계를 만들어내는 전쟁의 시스템은 차별, 혐오, 배제, 편견, 적대감, 불안과 같은 감정들을 파생해 이용한다. 그러나, 전혀 다른 우라늄 가루와 꽃가루를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듯이, 이 시스템이 옳은지 아닌지 바로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새에 우리의 삶에 전쟁의 기술들이 침투하고 있을지라도, 의심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전혜주가 보여주는 성찰의 방식으로 말이다. 



- 최은총 (1996-) dms960527@gmail.com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수료. 제 11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에 기획자 선정, 2024 트라이보울 초이스 전시 《매끄러운 세계와 골칫거리들》(2024), EMAPxFRIEZE FILM 연계전시《중간에서 만나》(2024), 홍천미술관 지원 전시 《플랜티 하우스》 (2023), 서교예술실험센터 지원 전시 《레테》(2023)를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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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혜주는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아트 앤 미디어(Art and Media)를 전공하여 석사와 마이스터슐러 자격을 수여받았다. 그는 도시공간에 다양한 형태로 기록된 시간성에 관심이 있으며, 각 지역과 장소들을 리서치하며 수집한 시간의 흔적들을 설치나 오브제로 재구성, 또는 공공장소에 개입하는 프로젝트들을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꽃가루를 포함한 공기 중의 미립자를 탐구하면서 미시적 생태계를 통해 감춰진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거나 생물자원을 다루는 전세계적 산업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https://sema.seoul.go.kr/kr/support/nanji_residency/detail_info?actNo=1255368#majorWorks) 
작가 홈페이지: https://hyejoojun.com/

2) 송은미술대상의 주인공, 전혜주가 만드는 작고 작은 세계 (검색일: 2025년 2월 22일)




전혜주, 〈Hummer〉, 2022,  초지향성 스피커, 2채널 사운드(4분 39초)표본테이블(10 x 800 x 110cm), 
수집된 식물과 꽃가루 표본, 레퍼런스 이미지(디지털프린트)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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