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자기 전문 온라인 경매 사이트 기린스제이제이옥션(KIRIN'S JJ Auction)이 문을 열었다. 서울 인사동 기린갤러리 정용호 대표가 운영한다. 정 대표는 "한국 도자기의 미감과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싶어 온라인 경매라는 창구를 택했다"고 했다. www.kirinsjj.com 에서 29일까지 제1회 경매 '고려, 조선 도자기 주자전'이 진행 중이다. (02)734-4988
- 2016.01.28 조선일보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살 때 15%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문화융성카드가 출시됐다. 가입비·연회비 부담이 없는 체크카드로, 전국 IBK 기업은행 지점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3월부터는 NH 농협은행에서도 발급할 예정이다.
◆드림파크21 예술경영연구소가 주관하는 백남준 10주기 기념 미술관 토크 ‘Tiger Lives, Today·호랑이는 살아있다, 오늘’이 28일 오후 5시 서울 세종문회관 세종마루에서 열린다. 이동일 서강대 영상대학원 교수가 특별강연을 한다. 02-2678-8650.
△상명대 <서울캠퍼스>▷산학연구처장·산학협력단장겸창작발전소왼손소장 김동근▷박물관장 류한수<천안캠퍼스>▷디자인대학장겸상명갤러리관장 김재현
- 서울신문, 문화일보 2016.01.28
- 중앙일보 2016.01.29
◆ 권평만(서예가·전 예림화랑 대표)씨 별세: 은경 은숙 영신(용마중 교사)씨 부친, 유인수(한전산업개발 비상임 이사) 최선혁(육군 제31사단 정훈공보참모) 김재수(KC코트렐 상무보)씨 장인=27일 오후 12시20분 강동 경희대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440-8913.
- 한겨레신문, 중앙일보, 매일경제, 문화일보 2016.01.28
위대한 ‘예술경영자’ 셰익스피어/정재왈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올해는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서거 400주년이 되는 해다. 세계 곳곳의 극장과 극단들은 앞다투어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우리 국립극단도 그의 말년 작품에 속하는 ‘겨울이야기’로 한 해를 시작했다. 극작가로서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은 필설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도 현대인을 셰익스피어처럼 잘 그려 내지 못한다.” 국립극단 김윤철 예술감독이 설파하듯 인간의 욕망과 심리에 대한 통찰은 대단한 것이어서 동서고금을 통해 ‘영원히’(timeless) 현존하는 이유다.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은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그 유명한 말로 영국의 국부(國富)적인 가치를 부여했다.
셰익스피어는 빼어난 지략과 강인한 리더십으로 영국을 강성 제국으로 만든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인물이다. 셰익스피어 외에 벤 존슨, 크리스토프 말로 등 극작가와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 사상가 프랜시스 베이컨 등 빼어난 문인들이 많이 등장해 영국의 르네상스가 꽃을 피운 시기다. 특히 연극을 좋아한 여왕은 배우들을 수시로 왕궁으로 초대했고 직접 관람도 즐겼다. 로즈극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보면 이런 행적이 잘 담겨 있다.
연극에 대한 절대군주의 애정은 셰익스피어에겐 주마가편이었다. 하지만 나중 극작가로서 인정을 받아 귀족과 서민의 중간 계급에 해당하는 ‘젠틀맨’이 된 그의 진면목은 다른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예술경영자 셰익스피어’를 부각하고 싶다. 그는 위대한 극작가 이전에 냉철한 현실주의자요 대중주의자였다.
첫째, 그는 대중 취향을 꿰뚫는 예민한 기획자였다. ‘오셀로’와 ‘맥베스’, ‘리어왕’ 등 궁중을 무대로 한 대표작들은 당시 튜더 왕조의 신물 난 권력 쟁투를 들여다보는 거울이었다. 서민들은 이 거울로 드러난 권력과 욕망의 허망함을 조롱하며 즐겼다. 당대 관점에서 보면 셰익스피어는 철저한 대중 통속 극작가였다. 불세출의 위대성은 오히려 후대가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는 빼어난 극장 경영 전문가였다. 엘리자베스 시대 런던 외곽 템스 강변엔 공공극장들이 속속 들어섰고 이곳이 서민 대중 연극의 발신지였다. 셰익스피어는 글로브 극장을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극장 붐을 이끌었다. 귀족들은 게으름과 전염병의 온상이라며 이곳의 연극을 경멸했으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를 그들을 견제하는 지렛대로 삼았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관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이용했다.
셋째, 그는 이재에 밝은 투자자이자 현장 전문가였다. 공연이 있는 날 셰익스피어는 극장 문 앞에서 일일이 관객의 표를 확인하던 수표인을 자처했으며, 주식회사 형태의 극장과 극단의 주주로서 수익 배분에도 철저해 나중에 큰돈을 벌었다. 너무 셈이 지나치다 보니 말년에는 수시로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런 셰익스피어를 보면 결국 그의 위대한 작품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란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 자신이 선과 악,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을 두루 한 몸에 담고 있었으므로 인간의 원초적 속성을 냉혹하게, 절절하게 파고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가식 없는 진정성으로 인해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예술 작품을 평가하는 당대의 일방적 시각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예술에 터무니없는 급을 두어, 흔히 대중예술을 폄하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도 그 일방적 시각의 하나란 교훈을 셰익스피어를 통해 얻는다. 그는 심지어 치밀한 장사꾼이기도 했던 것이다.
- 서울신문 201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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